좋은 아침입니다.
저는 약 15시간 전에 부제로 서품 받은 문영균입니다.
아직까지도 부제 서품을 받았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합니다.
특히 교회법상으로 첫 강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이 시간이 많이 걱정이 되는데, 성령께 은총을 청해보겠습니다.
제가 강론을 잘하게 해달라가 아니라, 듣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열게 해달라고요.
제가 작년 이맘때쯤 혼자서 부제 서품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오늘 미사를 주례하고 계신 저희 Rector, Tom 신부님께 메일이 왔습니다. 혼자 서품을 받게 되었으니 기도하면서 청원서 작성 잘하라고. 그때 저는 다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 작년에 8명이 부제서품을 받았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내년에 10명 정도가 서품을 받을 예정인데,
‘왜 올해에 나에게 이런 일이. 그것도 외국에서. 나는 외국인인데. 영어도 잘 못해서 그냥 다른 형제들에게 묻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막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서품을 준비하면서 타국에서 외국인으로서 혼자 서품을 받는다는 아주 기이한,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이 정말 저를 위한 하느님의 초대였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의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 체험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하라는 그런 초대말입니다.
‘그냥 남들 뒤에서 묻어가겠다. 최대한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겠다. 제발 나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마라. 도망가자.’
3년 전 처음 미국으로 파견을 받아 신학 공부를 시작한 뒤 제가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는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30년 넘게 한국에서 살면서 영어로 말을 해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제가 미국에 와서 딱 일주일 지내고 들었던 생각은 ‘다시 돌아가고 싶다’였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저의 classmate인 John Meyer와 Victor, 그리고 Nathan은 잘 알겠지만, 과장하지 않고 그 당시 저의 영어 실력은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정말 잘 못하는데, 그때는 어땠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언어가 안되니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어제 서품식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서의 고백이 딱 저의 고백이었습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을 할 줄 모릅니다.
” 학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 생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 공동체에서 모든 순간을 피하고 싶었고, 마주하더라도 최대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 고통의 시간, 빨리 지나가서 이 순간을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그 시간이 저에게 예수회원으로서, 성직을 준비하는 수도자로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느낍니다.
그전에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저의 약함을 이제는 직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하느님께 더 의지하게 되었으며, 설령 제가 좋은 결과를 내더라도 그것은 저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더욱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며,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분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다른 해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포도밭에 심긴 무화과나무는 하느님으로부터 각별한 은총과 보살핌을 받고 있는 우리를 뜻합니다.
나무를 베어버리라는 주인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다가올 심판을 상징하고, 정원사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느님 그 자체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나무를 베어버리라는 주인을 하느님으로, 정원사를 중재자 예수님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저에게 하느님은 너무나도 자비롭고 무한히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저는 이 정원사의 중재를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함께 일하시는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온 지 3년이 조금 넘었고, 이 시점에 부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기다린 3년이란 시간과 비슷한 기간인데, 저는 어때 보이시나요?
무화과 열매를 맺은 것 같나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맺는다면 어떤 퀄리티의 열매를 얼마나 맺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저에게 약한 영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는가?”
지배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저는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얼른 지배인이 저를 잘라 버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대로 두어라. 내가 거름을 더 주고 옆에서 기다리며 도와줄테니, 같이 한번 노력해보자. 나도 최선을 다할테니, 너도 최선을 다해주렴.”
그런 너무나도 따뜻한 대답을 들은 저는 다시 한번 저의 미국에서의 체험을 떠올리게 됩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저의 역할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할이라고, 그분께서는 끊임없이 기다리신다고. 설령 내년에 다시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평생 같은 말을 해주실 것입니다.
“기다리겠다. 함께 더 노력해보자.”
서두에 말씀드렸던 저의 기도.
“주님,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 뒤에 바로 따라오는 예수님의 말씀 다들 아시지요?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치러진 어제의 서품식을 준비하면서 이 잔을 거둬달라는 저의 과거의 기도는 당신 뜻대로 하시라는 현재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부제품을 받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임을 잘 압니다.
St. Andrew Kim 한인 커뮤니티와 JST 공동체에서 받은 크나큰 사랑, 여러분, 어제 잘 보셨지요?
그 크나큰 사랑을 다 갚기에 저는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천천히 갚아 나가자고 초대하시고 계십니다.
저의 부족함은 당신의 힘으로 채워줄 테니, 함께 노력하자고.
그런 하느님 믿고, 저의 부족함 내려놓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서 봉사하는 부제가 되겠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을 끝으로 강론을 마무리하면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그 믿음을 가지고 부제직 수행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멘.
